|
| 1 | +--- |
| 2 | +date: 2025-11-08 |
| 3 | +category: [독서] |
| 4 | +published: true |
| 5 | +fixed: false |
| 6 | +desc: 작가 (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) |
| 7 | +--- |
| 8 | + |
| 9 | +> 그의 내면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. |
| 10 | +> 그의 얼굴,(그 시절 초상화들이 시원치 않아서 거기서 거기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누구의 얼굴도 닮지 않았다.) |
| 11 | +> 또 수다스럽고 환상적이고 설레는 그의 말 뒤에는 약간의 냉랭함, 누구도 꾼 적 없는 꿈이 도사리고 있었다. |
| 12 | +> 그는 처음에는 모든 살마이 자기 같은 줄 알았다. |
| 13 | +> 그러나 자신의 그 공허함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어느 동료가 이상하게 생각하고는 |
| 14 | +> 그의 잘못을 일깨워 주고, 사람이 자신이 속한 종과 다르면 안 된다는 것을 영원히 느끼도록 했다. |
| 15 | +> 그는 한때 치유 방법을 책에서 찾을 수 있으려니 해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다. |
| 16 | +> 같은 시대를 살았던 누군가의 말마따나 "약간의 라틴어와 그보다 더 약간의 그리스어"를. |
| 17 | +> 나중에는 인간의 기본 의례에 자신이 구하는 것이 있을까 싶어, |
| 18 | +> 6월의 긴 시에스타 때 앤 해서웨이\*에게 그 의례를 맡겼다. |
| 19 | +> 그는 이십 대의 나이에 런던으로 갔다. |
| 20 | +> 본능적으로 누군가인 척하기에 이미 능숙했다. |
| 21 | +> 자신이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. |
| 22 | +> 런던에서 그는 신이 자신을 위해 예정한 직업을 발견했다. |
| 23 | +> 배우였다. |
| 24 | +> 무대에서 다른 사람이 되는 유희를 벌였고, |
| 25 | +> 청중은 그를 그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 유희를 벌였다. |
| 26 | +> 배우 일은 그에게 독보적인 행복감을 가르쳐 주었다. |
| 27 | +> 아마 처음 겪는 행복이었으리라. |
| 28 | +> 그러나 마지막 대시가 갈채를 받고 마지막 사자(死者)가 무대에서 퇴장하면, |
| 29 | +> 비현실이라는 증오스러운 느낌이 그를 엄습했다. |
| 30 | +> 더 이상 페렉스\**나 타무리가 아니고 다시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었다. |
| 31 | +> 이를 참지 못한 그는 또 다른 영웅들, 또 다른 비극적 이야기들을 상상하기 시작했다. |
| 32 | +> 그리하여 육신은 육신의 숙명에 걸맞게 런던의 사창가와 선술집들을 전전하는데, |
| 33 | +> 영혼에는 예언가의 경고를 무시하는 카이사르가, 종달새를 증오하는 줄리엣이, |
| 34 | +> 운명의 여신이기도 한 마녀들과 황야에서 대화를 나누는 맥베스가 거처했다. |
| 35 | +> 그 사람만큼 많은 사람이 되어 본 사람이 없어서, |
| 36 | +> 마치 이집트의 프로테우스처럼 존재의 모든 모습으로 다 변신해 보았다. |
| 37 | +> 그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확신하고 때로 작품 한 구석에 고백을 남겼다. |
| 38 | +> 이를테면 리처드는 자신은 다중인격자라고 단언하고, |
| 39 | +> 이아고는 "나는 겉보기와 달라요"라는 묘한 대사를 친다. |
| 40 | +> 존재하고 꿈꾸고 연기하는 정체성에 영감을 얻어 남긴 유명한 구절들이었다. |
| 41 | +> |
| 42 | +> 그는 20년 간 그 연출된 환각 속에 살았다. |
| 43 | +> 하지만 어느 날 아침, 칼에 맞아 죽는 수많은 왕, |
| 44 | +> 만나고 엇갈리고 달콤하게 죽어 가는 수많은 연인이 되는 일이 질겁할 정도로 권태롭고 끔찍해졌다. |
| 45 | +> 바로 그날 극장을 팔기로 결정했다. |
| 46 | +> 일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고향 마을로 돌아왔고, |
| 47 | +> 어린 시절의 나무와 강을 되찾았으며, |
| 48 | +> 결코 이것들을 과거 그의 뮤즈가 예찬하던 것, |
| 49 | +> 즉 신화와 라틴어 구절에 등장하는 유명한 나무 및 강과 연관 짓지 않았다. |
| 50 | +> 그는 누군가가 되어야 했다. |
| 51 | +> 한 재산 모은 은퇴한 사업가로서 융자와 소송과 소규모 고리대금없에 흥미를 느낀다. |
| 52 | +> 그리고 이 배역을 맡고 있었을 때 우리가 아는 그 무미건조한 유언장을 구술했다. |
| 53 | +> 이 유언장에서는 모든 감상적 혹은 문학적 특색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. |
| 54 | +> 런던 친구들이 그가 은퇴해 있던 곳을 방문하곤 했고, |
| 55 | +> 그러면 그는 이들을 위해 시인 역학을 다시 하곤 했다. |
| 56 | +> |
| 57 | +> 생전이었는지 사후였는지 모르지만, 역사는 그가 하느님을 대면하고 이렇게 말했다 곁들인다. |
| 58 | +> "하릴없이 그토록 많은 사람이 되었던 저는 단 한 사람, 바로 제가 되고 싶나이다." |
| 59 | +> 하느님의 목소리가 돌개바람 속에서 대답했다. |
| 60 | +> "나 역시 내가 아니리라. 나의 셰익스피어여, 그대가 그대 작품을 꿈꾸었듯이 나도 세상을 꿈꾸었고, |
| 61 | +> 나의 갖가기 꿈의 하나가 바로 그대이고, 그대는 나처럼 수많은 자이자 그 누구도 아니리라." |
| 62 | +> |
| 63 | +> \*앤 해서웨이. 셰익스피어의 아내. |
| 64 | +> \**토마스 노턴과 토마스 새크빌이 함께 쓰고 1560년 초연된 비극 '고보덕'의 등장인물. |
0 commit comments